미구엘 고메스 감독의 '타부(Tabu)'는 단순한 영화 그 이상의 예술 작품이다. 흑백의 영상 미학과 독특한 내러티브 구조를 통해 과거와 현재, 기억과 현실, 그리고 금기(타부)와 욕망 사이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영화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부분 "파라다이스 로스트(Paradise Lost)"에서는 현재 리스본에 사는 노년의 오로라와 그의 가정부 산타, 그리고 이웃 피라르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로라는 도박 중독에 시달리며 점차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죽음을 앞두고 지안루카라는 남자를 찾아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남긴다. 두 번째 부분 "파라다이스(Paradise)"에서는 과거 아프리카 식민지 시절의 젊은 오로라와 지안루카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이 두 번째 부분에서 대사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인물들의 입술은 움직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내레이션과 음악, 그리고 자연의 소리만이 영화를 채운다. 이 독특한 표현 방식은 과거의 기억이 갖는 모호함과 비현실성을 완벽하게 포착한다. 마치 오래된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그 안에는 현대적인 감수성과 복잡한 이야기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영화의 제목 '타부'는 금기를 의미하며, 이는 단순히 금지된 사랑의 이야기를 넘어서 식민지 역사, 문화적 충돌, 그리고 기억의 윤리학까지 확장된다. 아프리카 식민지를 배경으로 한 백인 식민자들의 이야기는 포르투갈의 식민 역사를 상기시키며, 그들이 원주민과 맺는 불평등한 관계는 또 다른 형태의 '타부'를 보여준다. 오로라와 지안루카의 불륜은 개인적인 도덕적 경계를 넘어서는 행위이지만, 동시에 그들이 살고 있는 식민지 사회 자체가 역사적인 '타부'의 산물이라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고메스 감독은 영화적 언어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사색을 이끌어낸다. "파라다이스 로스트"에서 보여지는 현대 리스본은 차갑고 메마른 모습으로 그려지는 반면, "파라다이스"의 아프리카는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공간으로 재현된다. 그러나 이러한 대비는 단순한 이국적 환상이 아니라, 기억이 어떻게 미화되고 재구성되는지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현재의 삶에서 소외된 오로라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욕망을 재발견하지만, 그 기억은 이미 왜곡되고 파편화되어 있다.
영화의 시각적 미학 또한 주목할 만하다. 고메스 감독은 16mm 필름으로 촬영한 흑백 영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불러온다. 이는 단순히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장치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하나의 기억 장치로서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카메라의 움직임과 프레임 구성은 종종 관객을 관찰자의 위치에 놓으며, 이는 우리가 타인의 삶과 기억을 어떻게 해석하고 소비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타부'는 또한 사운드를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특히 두 번째 부분에서 대사가 사라지고 내레이션, 음악, 자연의 소리만이 남게 되면서, 청각적 경험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기억 속에서 언어가 아닌 감각적인 요소들이 더 강렬하게 남아있는 경험을 반영하는 듯하다. 특히 록밴드 라마스(The Ramones)의 'Baby, I Love You'가 극중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며 감정적 앵커로 작용하는 방식은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의 순환적 구조도 흥미롭다. 영화는 식민지 시대의 신화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현대 리스본으로 이동한 뒤, 다시 과거 식민지로 돌아간다. 이러한 구조는 과거와 현재가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그리고 역사가 어떻게 개인의 삶에 침투하는지를 보여준다. 오로라의 삶은 식민지 역사의 축소판이면서도, 동시에 그녀의 개인적 비극은 더 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타부'는 표면적으로는 멜로드라마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철학적, 역사적 성찰이 담겨 있다. 사랑과 배신, 욕망과 금기의 보편적인 테마를 통해, 영화는 기억과 역사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불안정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로라가 죽음을 앞두고 찾았던 지안루카는 결국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는데, 이 장면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순간으로, 기억이 어떻게 현재를 형성하고 또 현재에 의해 재해석되는지를 보여준다.
미구엘 고메스 감독은 '타부'를 통해 형식적 실험과 내러티브의 깊이를 동시에 추구하며, 현대 세계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의 영화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성찰과 사랑을 담고 있다. '타부'는 우리에게 기억의 아름다움과 위험성, 그리고 역사가 어떻게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타부'는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닌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영화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인간의 감정과 기억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의 마음속에 오래 남게 된다. 고메스 감독은 우리에게 과거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며,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거울을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타부'는 단순한 영화를 넘어서 하나의 철학적 경험으로 다가온다.